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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열칼럼> 내고향, 옛날의 서당 이야기
[2017-05-03, 05:05:31] 한겨레저널    
<김명열칼럼> <김명열칼럼> 내고향, 옛날의 서당 이야기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옛날 나의 어린 시절, 나의 할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의 훈장 선생님이셨다. 그 당시(1950년대) 내가 살고 있는 시골 고향마을은 일부 가정집에서 8세에서 10여살 되는 아이들을 정규과목을 가르치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한문을 가르치는 글방(서당)에 보내어 한문공부를 배우게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의 선생님(훈장)이신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나를 오라고 하지 않고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는 물론이고 내 위로 형님 두분과 누님 역시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켰다. 처음 나의 맏형님이 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장손자(맏손자)는 내가 가르쳐야한다고 하시며 국민학교 입학을 반대하셨는데,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인하여 장손자의 스승이 되시는 기회를 놓치셨다. 그러나 형님이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엄명을 내리셔서 이유 불문하고 곧바로 서당으로 직행하여 한문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한 덕분으로 맏형은 한글보다는 한문에 더 익숙해져서 대학은 물론 사서삼경까지 줄줄이 외우는 한문의 전문 학도가 되기도 했다. 한문공부는 저녁이 되어도 계속되어서, 국민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온 학생들 중의 일부는 저녁을 먹고 서당으로 가서 밤늦도록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동문선습을 배우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달 밝은 밤에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곳간에 숨어 있을때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고 천자문이나 명심보감을 낭송하는 낭랑한 학동들의 음성이 멀리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가끔씩 할아버지를 보러 서당을 방문했을 때, 목침위에서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모습을 이따금씩 보기도하였다. 어느 녀석은 종아리를 맞고 엉엉 울기도하고 계집아이들은 손바닥을 맞고 상을 찌푸려가며 아픔을 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숙제를 안 해왔거나 배운 것을 까먹었을 때 그리고 또는 나쁜 짓을 했을 때 나의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학동들의 훈육을 위해 싸리나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학생들이 종아리를 맞을 때는 목침에 올라가서 맞았는데 그 목침이 좁아서 잘못하면 넘어져 방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그런 풍경을 생각하면 우습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어찌됐건 옛날의 서당 훈장들은 학동들을 교육할 때 체벌을 엄하게 했기 때문에 그 전날 배운 것을 암송하지 못한 학생은 서당에 갈 때 싸리나무 회초리를 서너개 만들어 가야했다. 서당교육에서 회초리를 사용하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몽매(蒙昧=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자)한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은, 형벌로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되어 깨우치는 계기가 그로 말미암아 비롯되고, 그래서 이를 일러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을 일깨워주는 뜻에서 회초리를 든다고 나의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몽매함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이 본래 두가지의 일만은 아니다. 전 날의 몽매함을 일깨우는 것은 깨닫게 하는 것이고, 뒷날의 지혜로움을 일깨우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훈장이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은 교육적인 효과를 얻기 위함은 물론 위와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리석음과 사회의 어두움을 일깨운다는 목적이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선생이 학생을 체벌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국민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회초리나 막대기로 종아리나 엉덩이, 심지어는 몸뚱아리 아무 곳이나 얻어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마 지금 세상에 어느 선생님이 옛날처럼 마구 매질을 일삼는다면 그 선생님은 폭행죄에 걸려 하루도 못가서 쫓겨날 것이다.
옛날의 그 시절, 1950년대는 종이나 연필, 또는 붓이나 갱지, 그리고 창호지 등이 넉넉지 못한 형편의 시대라서 학교에서도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950년의 6.25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더욱더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교재들의 품질마저 좋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서당역시 입장은 다를 바 없었다. 종이가 귀하고 값도 비싸다보니, 나의 할아버지 서당에서는 분판(粉板)을 많이 사용을 했다. 이 분판은 조선시대에 널리 쓰여 왔던 방법인데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내 고향 충청도 산골 촌구석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의 교재방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물론 이때는 전쟁 직후라서 물자나 교재가 부족하다보니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예닐곱살 정도가 되면 서당이라는 곳에 입학을 하여 공부를 했다. 서당에서는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 대학을 가르쳤는데 연필이나 공책도 없었던 시대였다. 이들은 당시에 종이가 있긴 했어도 무척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한 양반집아이들은 몰라도 가난한 양반이나 평민들은 종이를 함부로 쓰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분판(粉板)이다.
서당아이들의 글씨연습을 위해 고안된 학습도구인데, 나무토막을 잘라 쪼개어 만든 판판한 널조각에 기름에 갠 분을 발라 만든 판이다. 나무판이 휘지 않도록 판의 양끝에는 틀나무를 대놓았다. 사용법은 붓에 먹물을 묻혀 분판위에 글씨를 쓰고, 지우고 싶으면 물을 적신 헝겊으로 닦아내는 것이다. 종이는 한번 쓰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데 분판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글씨연습을 할 수 있기에 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분판은 보통 벽에 걸어 보관을 했다. 분판이 생기기전에는 나무로 만든 모래를 깔아놓고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 공부를 했다. 이를 모래사(沙)자를 써서 사판(沙板)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분판을 사용하는 모습은 이제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진 서당의 옛날 모습이었는데, 세월이 몇십년 지난 지금 옛 시절의 내 할아버지 서당의 풍경들을 더듬으며 회고의 역사적인 서당이야기를 옮겨보았다.
나의 할아버지가 서당의 훈장이시다보니 가까이서 매일 서당을 곁에 두고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인건 나의 눈에 들어오는 모습과 광경들이 나 자신도 모르게 박혀지게 되었다. 훈장노릇하기도 무척이나 힘든 직업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전부를 아이(학동)들과 함께하며 교육에 전념한다. 수업료라고 해봤자 보리 수확 때 보리 한말, 벼 수확할 때 쌀 한말이 전부다. 가끔씩 학동들이 천자문을 떼거나 동문선습, 명심보감을 마칠 때 그것을 기념으로 그 부모님이 갖다 바치는(?) 시루떡, 또는 자기 집에서 따온 과일이나 음식일부가 서당으로 제공되는 날이면 그날은 서당의 잔칫날이고 파티 날이다. 그나마 가난한 아이의 집에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음식이나 과일을 가져온 학부모는 으레 서당의 훈장선생님께는 막걸리나 동동주등의 고급술(?)을 갖다 선물로 드리는데, 그 술을 받아든 훈장님은 이날만은 만사 제쳐놓고 술을 맛있게(?) 드신다. 그런 후 대취하여 서당의 아랫목에 큰 대(大)자로 목침을 베고 벌러덩 누우셔서 대들보가 들썩들썩 할 정도로 코를 골며 낮잠에 빠져든다. 훈장님이 대취하여 코를 골며 곯아떨어지셨어도, 학동들은 때는 이때다 하고 누구한사람 책보를 싸들고 땡땡이치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그저 다소곳이 앉아서 천자문을 외거나 접장(그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아이)의 말에 따라 예습과 복습에 열중한다.
훈장, 옛날에는 서당에서 한자와 한자로 된 글, 즉 한문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훈장이라고 불렀다. 서당은 훈장이 개인적으로 근처 동네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곳이다. 대개 보면 보통은 기본적인 한문책을 읽고 뜻을 설명해줄 수 있는 마을의 어른이나 학식이 높은 사람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훈육을 할 수 있는 어른이 훈장 일을 했다. 그러나 가끔은 높은 관직에서 벼슬을 했던 학자들이 퇴직 후에 집안 아이들이나 마을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 당시 서당의 훈장 선생님들은 이해 관계없이 오로지 후학들의 양성과 교육에만 전념한 듯싶다.
지금 세상에 보면 초, 중, 고, 대학을 막론하고 옛날의 나의 할아버지처럼 사명감이나 의무감에 입각해 귀천의 자식을 가리지 않고, 돈이 없어도 거절하지 않고 무료로 차별 없이 올바르게 가르치는 참된 스승님은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선생님을 돈을 벌기위한 직업상의 돈벌이 수단으로 선생노릇을 하는 선생님도 많이 있다. 옛날의 내 할아버지의 훈장시절이 그립다.
<이 글 내용 중 지금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쓴 것을 이해바랍니다. 그 당시의 사실적 내용을 리얼하게 표현하기위해 국민학교로 썼습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myongyul@gmail.com <1069/20170503>

ⓒ 플로리다 한겨레저널(http://www.florida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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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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